이때까지 엄마와 한 번도 떨어져 본 일이 없던 큰아이를 이참에 떨어트려 놓고 숨 좀 돌려볼 속셈(?)으로 미술 학원에 보내기로 마음먹었고, 마침 집 앞에 제법 규모가 큰 유치원이 하나 있기는 했는데 이상하게도 내키지가 않더라고요.
그때 저는 일찍부터 아이들 교육에 열을 올리는 부모들과, 그 욕구에 부응하여 아직 한글도 미숙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어니, 수학이니, 과학이니, 두뇌 계발 프로그램이니 하는 것들을 내세워, 턱없이 비싼 교재비와 교육비를 받는 어린이 교육 기관과 그 풍토에 대하여 심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입학
그래서 이사 오던 날 이삿짐 트럭 안에서 눈도장 찍어 두었던, 집 근처 허름한 상가 건물 3층에 자리 잡은 미술 학원을 찾아가 간단한 상담을 거쳐 아이를 입학시켰답니다. 그날, 예쁘고 날씬하셔서 아가씨인 줄만 알았던 미술 학원 원장 선생님께서 저희 학원엔 누구의 소개로 오셨는지,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아이가 학원에 다녀 본 경험이 있는지를 물어보셨고, 그에 따른 제 대답은 대략 이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잘 몰랐구요, 학원 이름이 이 근처에선 제일 미술 학원스러워서 끌렸습니다. 한글, 숫자 이런 거 빨리 안 떼도 좋고요, 그냥 그림 마음껏 그리고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신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아, 우리 애요? 학원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예요.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미술 학원이고 선생님인 만큼 행운이라 여기고 무조건 믿고 맡기겠습니다. 예? 글자 공부요? 우리 애는 아직 이름을 못 쓰는데요."
미술
그렇게 첫아이의 미술 학원 생활은 시작되었고, 날이 갈수록 집 안에는 아이가 고사리 손으로 조물락 조물락 만들어 온 작품들(나무젓가락 인형, 요구르트 병으로 만든 새, 우유 갑 상자, 지점토 액자, 과자 목걸이, 색칠한 조개껍데기, 나뭇잎을 붙여 만든 모자, 플라스틱 비행기, 털실 잠자리, 솜 바구니, 좁쌀 악기, 색종이 저고리, 바지, 비닐로 만든 비옷, 사탕 꽃, 골판지 왕관, 단추로 이어 놓은 지렁이, 찰흙 두꺼비, 은박지를 씌운 손거울, 풍선 물고기..., 어쩜 이렇게 무궁무진 할까요?)과 아주 기하학적인 그림들이 수북이 쌓여갔지요. 저는 그것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았으며, 날마다 아이의 창작물을 기다렸고, 아이가 그것을 우쭐거리며 내보일 때마다, 아무리 어설픈 것이라도 미친 듯이 손뼉을 치고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선생님은 원래 그런 분이셨는지, 아이 그림에 손을 대지 않았고, 뱀을 돼지처럼 그려도, 해를 땅에 묻어도, 똥을 오색으로 칠해도 뭐라 하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끝나고 돌아온 아이의 가방 속에 종종 이런 글귀를 넣어 보내셨죠. '동그라미를 많이 그리세요. 동그라미 안에 우주가 있답니다!' 아이는 주마다 가는 주말 농장, 소풍, 전시회 관람, 체험 학습을 통해 무럭무럭 자라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결석하는 날 한 번 없이 미술 학원 생활에 빠져 즐겁게 커가니, 제가 처음에 믿겠다고 말한 그대로 행운이 돼버린 거죠.
졸업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미술 학원을 졸업할 때는 졸업생이 일곱명 밖에 되지 않았지만, 삼 년 동안 아이들 삶의 길잡이가 되고자 온 힘을 쏟아 부으셨던 선생님의 눈물과, 이제 더 큰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 아이들의 당당하리만큼 초롱초롱한 눈빛이 몇 장의 사진으로 남아, 볼수록 가슴을 저미게 하였습니다.
큰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던 첫날, 같은 반이 된 친구에게 처음 건넨 인사말이 뭔 줄 아세요? "안녕, 난 푸른 곰 미술 학원을 졸업했어. 넌 어딜 나왔니? 만나서 반갑다! 우리 잘해 보자!"였답니다. 지금도 우리 아이는 지나가는 노란 미술 학원 버스를 보면 가슴이 뛰어 쫓아가고 싶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해마다 미술 학원 선생님께 쓰는 정성어린 편지를 거르지 않는답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아이 삶에 첫 선생님께 말이죠.
도대체 그 푸른 곰 미술 학원이 어디냐고요? 그런 선생님이라면 우리 아이도 보내보고 싶다고요? 아쉽게도 큰아이가 미술 학원을 졸업하던 그 해, 급격한 학원생의 감소에 따른 어려움으로 문을 닫고 말았답니다. 끝으로 저도 그 특별하셨던 선생님께 다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이렇게 글로 적어 남겨봅니다. 선생님, 아시죠?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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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훈훈해 지네요.
그 선생님께서 더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아이들 머리에 지식을 넣기보다는 감성을 길러주는게 먼저가 아닌가 싶네요.
네, 감성이 충만한 아이가 이성도 발전하며 잘 크는 거 같아요.